개미라는 그 작고 조용한 것에 대하여 (2)
이 주무관이 얼마나 오랫동안 이 비밀을 숨겨왔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는 그 헝겊 밑에 처음 실험을 시작했을 때 함께했던 단 하나의, 최초의 개미의 흔적이 있다고 했다. 그가 하는 모든 말들은 그가 말하는 실험을 알지 않고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미싱 링크들에 불과했다. 그는 내게 함께 앉을 자리를 권했고, 바로 그 곳에서 그가 말하는 이 기이한 특이점, 즉 실험이란 것에 대해 나는 어둠 속을 헤집듯이 어렴풋이 알아갈 수 있었다.
아주 이상한 일이었지만, 심지어 다소 환상극스럽기까지 했지만, 그는 몇 달 전에 집에 우연히 들어온 개미를 한 마리 보고 그런 생각을 했다. 민원인을 충분히 공감하고 이해하는 것이 그가 제공하는 서비스의 부수적인 요소 중 하나라면, (그는 몇몇 고객들로 하여금 로봇은 민원인들을 공감할 수 없어 대체자로 적합하지 않다는 평가를 몇 차례 받았다) 그는 다양한 증명서들이 다루는 하나의 본질적인 요소, 즉 삶이라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만약에 그가 그것을 조금 더 잘 이해하게 된다면, 그가 형식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의무론적인 생명 중시 사상이나 공리주의적인 사회 방식 같은 것을 인간의 감정에 입각해 더욱 잘 풀어낼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러면 그는 지금 그가 계속해서 부정적인 평가를 받고있는 부분, 즉 로봇이기 때문에 삶을 사는 인간을 공감할 수 없다는 부분을 개선할 수 있으리라. 그는 그렇게 설계자도, 누구도 요구하지 않은 자신만의 개선 방안을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모든 사고의 흐름이 그의 회로를 타고 이루어지는 동안, 근처에 있던 이 길 잃은 개미 한 마리가 순식간에 그에게 실현에 관한 영감을 마구 불어넣고 만 것이다.
주무관은 그 개미에게 자신이 아는 것을 '기계적인' 방법으로 모두 전했다. 그는 우리가 누군가를 가르치기 위해 하는 전통적인 방법, 즉 책 같은 매체나, 반복되는 학습, 암기, 이런 것이 아니라 철저히 그만이 할 수 있는 전자적인 방법을 이용했다고 했다. 나는 몇 번이고 되묻고 되물어가면서 그가 도대체 어떻게 살아있는 개미에게 지식을 전했다는 건지 이해해보려 했지만, 결국에는 모든 게 불가해한 도돌이표였다. 어쨌든 나는 오늘의 전말을 알기 위해 실험에 대한 얘기를 들어야 했으므로, 이 부분에 대해서는 아쉽게도 포기하고 넘어가야만 했다. 주무관은 이 개미를 있는 그대로, 피실험체라고 불렀다.
그는 개미장을 하나 구해서 그 개미와 다른 개미들을 섞어 넣었다. 개미들이 그렇게까지 많지 않을 때에는 주무관은 어렵지 않게 피실험체를 다른 개체들로부터 쉽게 분간할 수 있었다. 턱의 모양이나, 걸음걸이, 몸 양옆의 약간의 비대칭 같은 걸로 말이다. 처음 두어 달 동안 개미장은 보기에는 평화롭게 번성하는 듯 했다. 그는 계속해서 먹이와 물을 공급하고, 더러운 것들을 치우며 개미들이 살기 좋은 환경을 유지했다. 그러자 불과 이십여 마리 남짓이던 개미는 금세 하나의 군락이 되었다. 그리고 그 군락 안에서, 피실험체는 외로움을 느낄 새도 없이 그저 주어진 역할에 만족하며 살아가는 듯했다.
주무관은 피실험체와 긴밀한 관계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언제 그 개미가 삶에 대한 답을 찾을지는 누구도 모르는 일이었다. 죽음의 말미에 다다라서일수도 있지만, 당장 다음 날 아침에라도 그 개미가 깨달음을 얻을 수도 있는 것이라고 주무관은 생각했다. 그러니 그 개미가 주무관의 곁으로 와서 배운 것들을 말할 수 있으려면, 그를 낯선 존재로 인식하기보다는 언제나 다가올 수 있는 그런 편안한 존재로 인식해야 했던 것이다. 그래서 주무관은 일주일에 두 번씩, 밤에 피실험체를 개미장에서 빼내어서 자유를 주었다. 그러면 피실험체는 이리저리 집을 돌아다니거나, 주무관을 가만히 관찰하는 식이었다. 그는 절대로 탈출이나 도피를 감행하지는 않았다. (천적이 없고 신선한 먹이가 늘 공급되는 이 편안한 삶의 수혜자가 되는 것이 아무래도 좋은 일이라는 걸 그도 알았으리라) 이러한 주기적인 외출이 몇 번 반복되자, 이 개미는 멀리 가지 않고 자연스레 주무관 곁에 맴도는 시간이 많아졌다. 주무관은 그럴 때면 개미에게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하고는 했다. 그러면 개미는 나름대로 자신의 사고를 담아 대답했다. 저녁 테이블의 주제는 다양했다. 날씨, 스포츠 경기, 정치, 내연기관, 뇌하수체, 프랑스 철학가들의 해체주의, 그리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버린 종교와 언어와 민족들에 대하여... 피실험체는 무지한 다른 개미들 사이에서는 할 수 없는 고도화된 논증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기뻐했고, 로봇은 그 개미의 소통 능력을 간접적으로 점검할 수 있어 만족했다. 실험의 전제조건에 따르면, 개미는 언제나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어야 했다.
군락은 나날이 커져만 갔다. 그 즈음 해서 주무관은 개미집의 크기를 키우거나, 아니면 군락을 형성하는 개미들 일부를 빼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가만히 돌이켜보면 그것은 만족하도록 통제된 사육 환경에 불과해 보였다. 개미들을 평생토록 행복하게 하는 것은 사육의 방향이지 그가 생각하는 실험의 방향은 아니었다. 그는 오늘날의 인간들이 얼마나 비정상적으로 조밀하게 살고 있는지를 생각했다. 서울이나 자카르타, 뉴욕 같은 대도시들처럼. 그런 삶이야말로 주무관이 마주하는 민원인들의 삶이었다. 그는 단지 군락이 살아남을 수 있을만한 최소한만의 먹이를 주면서 계속해서 그 혼란스러워지는 삶을 지켜보기로 했다. 개미들은... 늘어나고, 늘어나고, 늘어났다. 그 속도는 어찌나 빠른지 불과 한 달 사이에 두 배는 되어버린 것만 같았다. 그 수가 너무나도 많다보니, 주무관도 집게를 넣어 피실험체를 꺼낼 때마다 다른 개미들을 마구 흔들어 떼어내지 않으면 안 되었다.
더듬이의 움직임만 보아도 개미들이 예민해져가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탁자에서 피실험체는 왜 우리의 삶을 더 나아지게 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더 큰 개미굴, 더 많은 음식, 그런 것이 불가능한 게 아니지 않느냐고. 주무관은 그가 주어진 이 삶을 살기를 바라는 것이지, 그를 사육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기에 그렇게 할 수 없다고 했다.
어느 날 저녁에 피실험체를 맞이하기 위해 개미장 뚜껑이 열리고 얇은 핀셋이 하늘에서 아래로 들어섰다. 피실험체는 기다렸다는 듯이 더듬이를 위아래로 기울이며 가만히 잘 보이는 곳에 서 있었다. 다른 개미들이 그 차가운 스테인리스 스틸을 먹을 것인줄 알고 마구 다가와 깨물고 더듬었다. 달라붙는 개미들을 쫓아내려 이리저리 흔들리는 핀셋 사이로, 피실험체의 중간 마디가 핀셋 끝에 닿았다. 그가 마치 승천하는 존재처럼 하늘로 이끌려 올라가는 동안, 다른 개미들이 앞다리들을 올리고 격렬하게 턱을 딱딱 대면서 이 알 수 없는 현상에 대해 혼란스러움을 드러냈다. 그런데 그 순간, 조금 높은 둔덕에서 뛰어내린 개미 하나가 그의 끝마디에 있는 다리 하나를 입으로 콱 깨물더니 있는 힘을 다해 떨어지는 것이었다. 그렇게 피실험체는 뒷다리 하나를 잃고 말았다.
그의 떨어진 다리가 어디로 갔는지는 개미들을 빼고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중요한 건, 그 때 이후로 개미들이 서로를 물어뜯고 싸우는 것이 더더욱 명백하게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매일 아침 출근하기 전에 개미장을 살펴보면, 꼭 개미 몇 마리가 몸 어딘가가 뜯어먹힌 채 모래밭 위에서 죽어 있었다. 빽빽한 개미굴 길을 지나가다가도 누가 누구를 밀쳤다는 이유로 싸움이 나는 게 허다했다. 빵 부스러기 같은 걸 주면 조그만 조각 하나를 개미 네댓 마리가 모여서 제각기의 방향으로 마구 끌고가는 것이 보였다. 주무관은 핀셋을 집어넣는 게 점점 힘들어졌다. 피실험체를 집어들려 할 때마다, 수많은 개미들이, 마치 보이지 않는 물이 차오르기라도 하는 것처럼 절박하게 구원을 요청하는 발짓을 했다. 고개를 하늘로 처들고 애절하게 더듬이를 흔들어가면서. 그들 중 누가 뒷다리를 뽑아간 그 악독한 개미처럼 될지 누가 아랴?
군락이 공황에 빠졌다. 개미들은 두 갈래, 세 갈래로 분열하고, 싸움과 전쟁 같은 게 있었고, 그러고 나니 이제는 주무관의 실험이 정체되어가는 것 같기도 했다. 피실험체는 싸움을 구경하는 것에서 어떤 재미도 찾지 못했다. 그는 때때로 핀셋에 이끌려 나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도 알 수 없었다. 그는 이 모든 것에 지쳐 있었다. 그는 테이블 위에서, 자신보다 몇십 배는 더 큰 이 양철 로봇에게 몇 번이고 호소했다. 처음에는 논리와 현실성에 기대어 말하다가, 다른 날에는 턱을 악다물며 화를 내기도 하고, 우는 소리를 내기도 했다. 그는 그러다가 스스로를 해칠 것이라는 경고성의 말까지 했지만, 그 어떤 것도 사실은 주무관을 움직이게 하지는 못했다. 그가 스스로 어떤 결말을 선택하건 간에 그것은 실험의 내용에 불과할 뿐이었다. 이 즈음 이야기를 듣자 나는 기묘한 감정이 괜스레 역겹게 올라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 가녀린 생명체의 호소를 아무렇지 않게 묵살하는 로봇의 태도가 너무나도 인간적이지 못해 잔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가도, 곧, 그 상황을 상상해 보니, 그 개미는 단지 개미이지 않는가 - 단지 수많은 사람들에 의해 오늘도 이래저래 죽어나가고 있을 하잘 것 없는 미물들 중 하나이지 않는가?
잠깐의 잡념 사이로, 주무관은 말을 이어나갔다. "폭설주의보가 한창이던 그 때를 기억하시나요." 나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 때에 저는 빙판에서 사고를 당해서 2주 동안 수리를 받으러 나가 있었죠."
여태껏 그 실험에 있어 피실험체의 존재만 생각하던 주무관에게는 참 예상치도 못한 일이었다. 어느 대학생이 타고 가던 스쿠터가 글쎄 그를 치고 넘어뜨린 것이었다. 사람이었으면 꽤나 끔찍했을 정도로 그는 아주 크게 넘어졌다. 그의 머리를 감싸는 외골격이 부서져 조각이 나고, 회로가 구부러진 채 드러나 눈송이를 맞고 있었다. 어찌되었던 간에 그는 그 사건 탓에 설계자에게 가서 그 부서진 조각들을 다시 끼워맞추고, 새 부품으로 갈아넣는 공정을 거쳐야만 했다. 그의 일터에서는 로봇 하나가 잠시 없어진 것이 그렇게까지 큰 공백까지는 아니었다. 다만 그의 실험실에 있어서는 송연한 재앙이었다.
개미의 삶이 그리도 짧다면야 같은 하루조차 인간보다 농밀할 것이다. 2주라는 시간은 인간에게도 적잖은 시간인 터인데, 과연 그들이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매일 그렇게 먹이를 주고 챙겨주던 존재 없이, 플라스틱 상자 안에 갇힌 채로? 수리를 마치고 돌아온 주무관이 발견한 것은 반쯤 잡아먹힌 개미 주검들이 뒤섞여 있는 모래사장이었다. 어떤 것이 살아있고 죽었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군락의 절반 정도 되는 양이, 언제 시작했는지 알 수 없는 살아남기 전쟁에서 패배한 채 묻혀 있었다. 남아있는 개미들은 평소보다 느릿느릿한 몸짓으로 패배한 개미들의 잔해를 양분 삼아 살았다. 처참하고 흉한 모습임에 분명하지만, 모든 게 통제된 개미장 안에서 그들이 스스로 살아있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그런 것 말고는 없었다. 주무관은 다시 먹이를 주고, 죽은 개미들을 하나 둘씩 솎아내기 시작했다. 그렇게 그 아수라장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더 적은 개미들과 함께 본래의 모습을 되찾아가는 듯했다.
다리 하나가 없는 피실험체는 용케도 그 곳에서 살아남았다. 주무관은 다시금 저녁의 대화를 시작하려 했다. 개미는 예전처럼 뭔가를 요구하거나 호소하려 하지 않았다. 다만 그는 평소보다 훨씬 조용하고, 차분한 투로, 마치 자신의 입 밖으로 나오는 단어 하나하나를 이국의 언어인 것마냥 아주 천천히 곱씹어가면서 말할 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하는 말들은 일말의 힐난이나 책망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는 그저 수리를 잘 마치고 돌아왔는지, 힘든 것은 없는지 물으며 상냥한 간호사와 같은 태도를 했다. 만일 이 로봇이 사람이었다면, 이 개미는 단번에 일어나서 따뜻한 차와 담요라도 가져다 줄 준비가 되어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그는 그를 지겹게도 괴롭히던 비좁은 개미장 문제가 어떻게든 해결이 된 것에 대해 만족하고 잊으려 하는 듯 보였다. 그게 아니라면, 자신의 운명이 결국에는 이 로봇에게 달려있다는 것을 알고 체념한 것이라던가.
어느 날 주무관은 그와 이야기하다 갑자기 정신을 잃었다. 기기에 이상이 생긴 것은 아니었고, 단지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나 최적화 프로세스 같은 것들이 밤에 실행되도록 설계자가 설정한 탓이었다. 어쩐 일인지 이걸 미리 파악하지 못했던 주무관 덕분에 한창 흘러가던 대화는 그대로 뚝 맥이 끊기고 말았다. 그 동안 개미가 무엇을 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중요한 것은, 그 날 아침에 다시 깼을 때 피실험체는 개미장 안에 스스로 얌전히 들어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 뒤에 주무관이 똑같은 일이 일어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을 때, 개미는 친절하게 말했다. "누구나 쉬어야 할 때가 있는 법이잖아요. 나는 신경 쓰지 말고 자도록 하세요. 개미장에 들어가는 건 나 혼자서도 할 수 있는 걸요."
그 개미가 이 야밤에 방 안을 돌아다닌다 한들 할 수 있는 게 무엇이겠는가? 그가 만약에 도망을 간다고 해도 주무관은 그마저도 실험의 성과이자 결말이라고 생각했다. 그 개미는 다른 사람들에게 말을 걸 수 있는 존재도 아니고, 자유를 찾는다 한들 어차피 얼마 살지 못하고 스러질 가냘픈 수명에 불과했다. 주무관은 2주의 공백과 전쟁이 있고 난 뒤에, 오히려 그 개미를 믿지 않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그와의 관계를 더 어렵게 만들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그는 개미를 다시 집어넣지 않고, 그냥 내버려 둔 채로 그렇게 몇 번이나 침대로 돌아가 자신만의 업데이트 시간을 가졌다. 눈을 뜨면 피실험체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개미장에서 그만의 삶을 살았다.
옆집에 묵는 청년이 샤워하는 소리가 벽을 타고 들려오는 새벽 두 시의 밤이었다. 교대 일을 하는 것 같은 그 청년은 새벽 두 시 즈음이면 집을 들어왔다가 나갔다 하며 복도에 발소리를 남기곤 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여간 거슬리는 생활 패턴이었겠지만, 눈을 감고 차가운 매트리스 위에 덩그러니 누워 있는 이 로봇에게는 전혀 감지되지 않는 소음이었다. 그는 얼핏 보기에는 정말 사람이 잠에 든 것 같아 보였다.
사고는 이상하리만큼 긴 후유증을 그에게 남기고 있었다. 그는 잃어버린 기억들을 재구성하고, 다시 반복되는 루틴에 스스로를 최적화시키면서도 무언가가 예전 같지 않음을 느끼고 있었다. 그가 생각하기에 변한 것은 없었다. 모든 부품이 제자리에 들어가 있음을 그는 인지하고 있었고, 하물며 인간들처럼 감정적으로 사고를 곱씹으면서 우울해할 이유도 하등 없었다. 그에게는 자연 치유라는 것이 없었다. 필요한 프로세스가 시행되면 뒤따라오는 결과는, 스크립트와 로그의 관계처럼 예측적이고 자명해야 했다. 그런데 그가 충분한 회복의 시간을 가졌음에 불구하고, 그는 여전히 손이 느렸고, 읽는 것이 침침했다. 연산에는 시간이 걸렸고 질문을 이해하지 못할 때도 있었다. 이 모든 기능 저하는 기계답지 않았다. 마치 - 마치 정말, 수리 센터에서 돌아온 로봇이 아니라 막 대수술을 마치고 퇴원한 사람인 것처럼 말이다.
샤워 소리가 또 다시 들려왔다. 그의 방 안에는 냉장고가 없어 냉각 시스템이 돌아가는 우리네 자취방의 익숙한 소음이 나지 않는다. 그의 방 안에는 시계가 없어 바늘 돌아가는 소리도 존재하지 않는다. 보일러도, 에어컨도 필요하지 않다. 그저 고요하기만 한 이 최소 조건의 방은 처음 이사왔을 때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단지 추가된 것이 있다면 그의 옷가지 몇 벌과, 청소 도구, 그리고 개미장만이 전부였다. 이불도 깔려있지 않은, 단지 얇은 천에 덮인 조그만 매트리스 위에 그가 몸을 뉘였다. 유리로 만든 눈 렌즈를 얇은 실리콘 눈꺼풀이 가렸다. 인간처럼 숨 쉬는 기색도 없이, 그렇게 꼼짝 않는 것을 개미는 테이블 위에서 잠자코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마 그 무렵이었을 것이다. 이 개미가 상냥함을 거두고 스스로 오랫동안 지켜왔던 비밀을 또 다시 드러냈던 것은. (다음 화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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